역사

4세기 말 5세기 초의 삼국관계, 왜의 실체

역사회복 2024. 1. 19. 17:45

백제가 371년 고국원왕을 전사시킨 후 고구려와 백제는 심각하게 대립한다.

373년 백제 독산성주가 300명을 거느리고 신라에 투항하였는데, 신라가 이들을 돌려 보내라는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377년에 고구려(삼국사기)와 신라(자치통감)는 전진에 사신을 파견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 중에서 더 강한 고구려와 동맹한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381년 부견은 신라 사신에게 "해동의 일이 옛날과 같지 않으니 무엇 때문인가?”라고 물었는데, 이는 고구려와 신라가 동맹하여 백제와 대립한 것을 말한 것으로 추측된다.

391년에는 고구려가 실성을 볼모로 삼았고, 서봉총 은합에서 보이듯이 391년 고구려의 제사에 신라 사신이 참석하며, 397년 충주 고구려비에서 보이듯이 고구려군이 신라에 주둔하며 신라왕을 이리저리 오라 할 정도로 신라는 고구려에 예속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백제는 광개토대왕릉비에 보이듯이 391년부터 열도인들을 동원하여 신라를 공격한다. 397년에는 열도에서의 동원을 강화하고자 태자인 전지를 왜왕으로 파견했다.

광개토대왕은 韓, 요동반도, 한반도에서 백제를 계속 공격하여 심각한 타격을 주었고, 백제는 이에 대응하고자 동원을 강화하였다. 그러자 399년 백제의 주민인 전라도왜가 못살겠다고 대규모로 신라로 도망갔다. 전라도왜의 도주는 광개토대왕비, 삼국사기, 북사에 공통으로 기술되어 있다.

400년 백제가 열도인들을 동원해 신라를 공격하자, 광개토대왕은 열도를 정벌하여 열도에 고구려 백제의 남북국시대가 도래하였다.

전쟁포로인 전라도왜는 신라의 소유였지만 광개토대왕이 403년 열도 고구려로 보내자, 신라는 고구려로부터 독립하고자 한다. 이 때 나라로 보내진 전라도왜가 사기꾼들이 야마토왜라고 거짓말하는 왜이다. 이들은 독자적 세력이 아니고 전쟁포로로 나라의 고구려계 국가인 안라국에 보내진 피지배민이다. 이들을 야마토라 부르지도 않았다. 사기꾼들이 삼국지에 나오는 가야계의 야마대국과 연결시키기 위해 야마토왜라고 사기치고 있다.

왜는 예이다. 왜는 배달국 성립시 바닷가 강어귀로 도망친 집단이다. 전라남도에도 영산강을 중심으로 왜가 정착하였고 이들은 백제의 주민이었다. 사기꾼들이 왜계 유물인 대형옹관묘를 마한의 것이라 사기치고 있다. 백제는 황하 요동반도 양자강 등 강어귀의 왜를 지배하며 환황해 무역을 하였다. 백제의 진평군인 광서성에서 전라도에서와 같은 외다리방아와 맷돌이 사용되고 있다.

왜는 우리 민족의 구성원이다. 일본이라는 것이 백제가 망하기 전에는 없다. 일본은 백제의 별칭이었다.

왜=일본인≠한국인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식민사학이다. 한국에서 독립되었던 일본이라는 나라가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거짓말이다. 열도는 7세기까지는 우리 역사강역이다.

일제와 조선총독부도 이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