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산군도 2

여말선초 왜구는 열도와는 무관한 중국동해안의 백제유민

원의 쿠빌라이는 사무역을 금지하고, 관민 합자의 무역선(관7, 민3)만 허용하였지만, 성종은 해금을 철회하고 적성국이었던 일본과의 무역까지 허용하였으면서도, 백제유민과 고려와의 왕래는 금지시켰다. 김성호, 『중국 진출 백제인의 해상활동 천오백년 2』, 맑은소리, 1996. 176-179쪽. ​ 고려와 백제유민이 결합할 경우 원의 통치에 위협이 될 것으로 우려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원나라 말엽인 1348년부터 백제유민인 방국진과 장사성은 원의 쇠약을 틈타 독자세력화 하였지만, 주원장이 이들을 제압하고, 1368년 즉위하여 백제유민의 본거지격이었던 주산군도를 철저히 파괴하고 해금정책을 실시하자, 생활기반이 파괴된 백제유민은 해적이 되었다. 김성호, 위 책, 189-210쪽. ​ 명나라는 이들을 왜구라 불렀다..

역사 2023.03.09

오월국(吳越國)과 무염선원(無染禪院)

오월국은 절강성에 전류(錢鏐)가 세운 나라이다. 전류는 852년 절강성 임안(臨安)에서 태어나 소금장수를 하다가, 혼란기 관리가 되어 황소의 난을 진압하고 그 공로로 진해군절도사겸윤주자사가 되어 893년 절강지역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주경미, 「吳越國과 韓半島의 佛敎文化 交流 新論」, 『역사와경계 106』, 2018. 207쪽. ​ 전류는 907년 후량으로부터 오월왕으로 봉작을 받지만, 893년부터 절강지역을 실질적으로 통치하였고, 주경미, 위 글, 207쪽. ​ 전류의 손자 전홍숙이 978년 북송에 나라를 바쳐 오월국은 사라지게 되었다. 오월국의 영역은 항주와 주산군도 등 백제유민이 가장 많이 활동했던 곳이다. ​ 북경 중국국가도서관에 당무염선원비(唐無染禪院碑)의 탁본이 전해지는데, 주경미, 위 글, ..

역사 2023.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