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사학 3

이문영은 지식인인가 아닌가? 판단은 독자의 몫.

얼룩소가 지웠는지 이문영이 지웠는지 모르겠지만, 필자가 얼룩소에서 이문영의 주장에 대해 반박한 글은 다 지워졌다. ​ 다 지우고 나서 이문영은 필자의 글에 반론을 했다. ​ 그 반론에서 ​ 이문영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그는 "강단유사사학은 일본서기의 신라7국을 임나7국으로 날조"라고 말하는데 대체 어디에 신라7국이라는 말이 나오는지? 이렇게 자신은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면서 역사학계의 해석은 날조라고 말하는 중이다. --------------------------- ​ ​ 이문영은 일본서기를 읽지 않았다. 그가 일본서기를 읽었다면 이런 거짓말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일본서기를 보자. ​ ​ ----------------------- 목라근자(木羅斤資), 사..

역사 2023.07.01

갈석산 위치의 명명백백한 증거: 기주협우갈석도 冀州夾右碣石圖

기주협우갈석도 冀州夾右碣石圖 ​ ​ ​ 지도의 바다에 쓰여 있는 문구가 다음과 같다. ​ ------------------- 冀之北貢 自沽易涿遼水入海 而後西向以上大河 永達冀都 此時九河未熟於海 而碣石正在河口 於其遡河西上 則碣石在右 故曰夾右碣石 ​ 기주의 북쪽에서 공물을 바치려면, 고수 역수 탁수 요수로부터 바다로 간 후, 서쪽으로 대하를 올라가서 멀리 기주의 도읍지에 도달한다. 이 때 구하(황하)가 바다와 잘 구분되지 않는다. 그런데 갈석이 똑바로 하구에 있어, 갈석을 의지하여 황하를 거슬러 서쪽으로 올라가면 갈석이 오른쪽에 있으므로 갈석을 오른쪽으로 낀다고 말한다. ------------------------ ​ 다른 많은 사료도 황하 어귀에 갈석산이 있음을 말하고 있는데, 기주협우갈석도는 시각적으로 명..

역사 2023.02.10

우리나라 역사학은 친일매국의 본부

일제 부역자들 승계 ​ 해방 후, 미국과 이승만은 각각 남한 내 확실한 반공정권 수립과 집권을 위해 일제 부역자와 협력하였다. 일제의 한국사 날조에 부역한 일제유사사학의 승계자들이 해방 후에도 학문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다. 그들은 일제에 대한 부역을 학문연구로 위장하였다. 날조를 실증이라는 말로 포장하여 날조된 사실이 객관적 학문연구의 성과인 것처럼 왜곡하여 그들의 부역 사실을 은폐하였다. 날조된 사실이 학문연구의 대상이 되는 순간 부역자로서의 정체성이 공개되므로 그들은 어떠한 반론도 허용하지 않았다. ​ 객관적 연구는 투명인간의 투명논문인 것처럼 왕따시켰다. 최재석, 신용하, 김석형, 김성호 등의 연구에 무시로 일관하였다. 학문이 아니라 교리가 된 것이다. 날조된 교리를 유지하기 위해 날조를 객관적인 학..

역사 2023.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