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성석 2

근초고왕은 한성에서 한성으로 천도했다.

동서양성 ​ 한반도와 중국 동해안을 동시에 통치해야 했던 백제는 한반도에 별도를 두는 것이 당연히 필요하였다. 김부식은 동서양성을 기술하는 『구당서』를 단순히 인용하기만 한다. 『三國史』 「雜志 地理 百濟」 舊唐書云, “百濟扶餘之别種, 東北新羅, 西渡海至越州, 南渡海至倭, 北髙麗. 其王所居有東西两城.” ​ 『구당서』는 그 왕은 거주하는 곳이 동서 두 성이 있다고 명시한다. 『신당서』도 동서 두 성이 있다고 한다. 『新唐書』 「東夷/百濟列傳」 百濟,扶餘別種也。直京師東六千里而贏,濱海之陽,西界越州,南倭,北高麗,皆踰海乃至,其東,新羅也。王居東、西二城 ​ 웅진과 사비를 동서양성으로 보는 견해도 정재윤, 「웅진성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 『백제문화 59』, 백제문화연구소, 2018. 5쪽.​ 있으나 바로 붙어 있는 ..

역사 2023.02.19

고려의 서경 (고구려 평양)이 현재의 평양이라는 것은 개솔

『수서(隋書)』는 고구려에 평양성 國內城 漢城의 세 도회지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현재의 평양에서 漢城이라 기록된 고구려의 각자성석(刻字城石)이 출토되었다. 고구려의 평양은 고려시대 때 서경이라 하였다. 김부식은 묘청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서경으로 가면서 안북대도호부에 이르러 다른 부대와 합류하는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안북대도호부가 지금의 안주라고 한다. 그들의 말에 따라 고려의 서경을 지금의 평양이라 하면 모든 토벌군이 서경으로부터 북쪽으로 직선거리 70km까지 간 것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반란군이 바로 개경으로 남하하여 임금을 모시면 순식간에 반란군과 토벌군의 위치가 바뀌게 된다. 즉 지금의 평양을 고구려의 평양으로 볼 수는 없고 구구려의 평양은 최소한 안주 북쪽에 있었고, 현재의 평양은 각..

역사 2023.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