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323

이세민(598-649)

김성규 "수말(隋末)·당(唐) 건국기의 정정(政情)과 이세민(李世民) 당 태종 이세민 연구." 건지인문학, 29.0 (2020): 5-26. 김성규 “唐의 군웅 제압에서 ‘玄武門의 變’ 발발까지에 대한 소묘: 당 태종 이세민 연구(2)”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역사문화연구 제77집 2021.02 123 – 148(26 pages) ㅇ 실록 열람 및 개찬 - 이세민의 황위 계승은 형을 죽이고 또 부친 이연을 핍박해서 얻은 것이며 인륜에 반하는 사건이었다(626년 현무문의 변). 이를 최대의 오점으로 자각한 태종이 끝내 실록을 열람하고 역사를 개찬(639년에 실록 열람 시도 640년에 열람하고 조작). 그 결과 『고조실록』과 『태종실록』 등의 주요 기록에서 태종의 공로가 부각된 반면, 자신의 정적이 ..

역사 2023.02.07

장보고

ㅇ 국적: 당나라 사수 연수현 출신, 백제 유민 ㅇ 이정기 세력 (4대, 765-819) 공격 시, 친당 세력인 왕지흥의 소장으로 복무. 장보고는 이정기 토벌의 공로로 819년 등주 적산포 신라소의 초대 대사로 임명됨.  - 당나라는 번진(藩鎭)의 반란을 진압한 후, 819년 지방제도를 정비하면서 상업에 종사하던 중국 동해안 백제의 유민들에게 과세할 목적으로 신라방·신라소를 설치하여 그 책임자를 대사(大使)라 하였다. 당나라 기본법전인 대당육전(大唐六典)」에도 “무릇 모든 군진의 대사와 부사 이상은 모두 겸인(시종)을 거느린다(凡諸軍鎭大使副使皆有廉人)”고 되어 있으며 이들의 임기는 4년(四年一替)이었다. 즉 신라방·신라소는 당나라의 지방행정기구이고, 그 책임자인 대사는 당나라의 관리였다.- 강단유사사학은..

역사 2023.02.07

광개토대왕릉비문 병신년조 기사 초입부의 올바른 해석 (소위 신묘년조 비문 해석) (전치문설은 개솔)

1. 일제가 본 광개토대왕릉 병신년조 문장의 초입부는 다음과 같다. 百殘新羅 舊是屬民 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來(入貢于)百殘 (聯侵)新羅 以爲臣民 以六年丙申 王躬率水軍討伐殘國 [백제와 신라는 예부터 속민이어서 줄곧 조공해왔다. 그런데 왜가 신묘년 이래 백제에 조공하며 연합하여 신라를 침략하였으므로 臣民(=신라)을 위하여, 영락 6년 丙申년부터 왕이 친히 수군을 이끌고 百殘國을 토벌하였다.] - 김병기, 『사라진 비문을 찾아서』, 학고재, 2005. 156-163쪽에 의해 入貢于가 渡海破로 변조되었다고 보았다. (날조된 글자의 글씨체가 다르고 글자의 위치도 다르다) - 계연수가 1898년 탁본한 내용을 토대로 이유립이 복원한 이유립본에 근거하여 聯侵으로 보았다. (윤창열, 「광개토태왕비문과 환단고기의 整合性..

역사 2023.02.06

광개토대왕릉비문 기해년 기사의 날조

광개토대왕릉비문은 기해년 문장도 날조되어 있는데 원래의 문장은 다음과 같다. 九年己亥 百殘違誓 與倭和通 王巡下平穰 而新羅遣使白王云 “倭人滿其國境 潰于城池 以奴客爲民 歸王請命” 太王(喜後) (稱)其忠□ □遣使還告以□計 [太王(喜後)의 喜는 김병기의 추측이고 後는 필자의 추측이다. 궤파성지의 경우 태왕이 기뻐한 것과 모순되므로 글자를 지웠을 것이다.] ‘潰于城池’가 ‘潰破城池’로 날조되어 있고,[김병기, 『사라진 비문을 찾아서』, 학고재, 2005. 166쪽.] 喜後가 지워져 있다. 날조를 바로잡아 해석하면 「영락 9년 기해년에 백잔이 맹세를 어기고 왜와 내통하였다. 왕이 평양으로 순시하자 신라가 사신을 보내 왕께 아뢰기를 “왜인이 그 국경에 가득 차 있다가 성지(城池)에서 도주하여, 신이(노객은 항복한 나..

역사 2023.02.05

「일본서기」의 일본은 열도백제이다. 야마토정권은 없었다.

「일본서기」에 倭나 大倭(大和)는 일본의 속국으로 기술되어 있고, 대왜가 야마토로 발음될 수도 없다. 예군 묘지명에서 일본은 백제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일본서기」의 일본은 백제이지 일본의 속국으로 기술된 大倭(大和)가 될 수 없다. 「일본서기」는 백제가 열도를 지방행정구역으로 지배하다가, 백제가 망하자, 백제의 별칭인 ‘일본’으로 독립하면서 열도인을 다스릴 목적으로 가공의 역사를 기술한 책으로 용비어천가와 같은 문학서이다. 열도에 왜계의 야마토 정권이 성립한 적이 없다. 『삼국지』와 『후한서』에 나오는 야마일(邪馬壹) 또는 야마대(邪馬臺)국은 가야계의 나라로 왜가 아니다. 일제유사사학은 일본이 한국이었음을 부정하기 위해 야마토왜라는 가공의 왕조를 창작하였다. 일제유사사학이 만든 일본고대사는 ..

역사 2023.02.04

남옥저 북옥저 동옥저, 고구려의 초기 수도

동천왕은 관구검에게 패하였는데, 『삼국지』 「위서 관구검전」, 『양서』 「동이전」, 『북사』 「고구려전」에 의하면 관구검은 동천왕이 옥저로 도망가자 왕기를 시켜 추격하게 하였고, 추격군은 옥저를 지나 1,000여 리를 추격하여 관구검기공비를 세웠다. 그 관구검기공비가 집안 판석령에서 발견되었다. 『삼국지』 「위서 관구검전」은 중국인들의 입장에서 조조의 위나라가 고구려를 통쾌하게 이긴 것을 기록한 것이므로, 크게 왜곡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부분이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집안 서쪽 1,000여 리에 옥저가 있었고 그 서쪽에 고구려의 수도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소위 강단사학계는 옥저는 한반도 동해안에만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삼국지』 「위서 관구검전」, 『양서』 「동이전」, 『북사』 「고구려전」이..

역사 2023.02.03

우리나라 역사학은 친일매국의 본부

일제 부역자들 승계 ​ 해방 후, 미국과 이승만은 각각 남한 내 확실한 반공정권 수립과 집권을 위해 일제 부역자와 협력하였다. 일제의 한국사 날조에 부역한 일제유사사학의 승계자들이 해방 후에도 학문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다. 그들은 일제에 대한 부역을 학문연구로 위장하였다. 날조를 실증이라는 말로 포장하여 날조된 사실이 객관적 학문연구의 성과인 것처럼 왜곡하여 그들의 부역 사실을 은폐하였다. 날조된 사실이 학문연구의 대상이 되는 순간 부역자로서의 정체성이 공개되므로 그들은 어떠한 반론도 허용하지 않았다. ​ 객관적 연구는 투명인간의 투명논문인 것처럼 왕따시켰다. 최재석, 신용하, 김석형, 김성호 등의 연구에 무시로 일관하였다. 학문이 아니라 교리가 된 것이다. 날조된 교리를 유지하기 위해 날조를 객관적인 학..

역사 2023.02.03

요동반도는 백제 영토였고, 신당전쟁으로 신라가 차지하였다.

『괄지지』에 “백제국 서남 발해 중에 큰섬 15개가 있는데 모두 읍락이 있고 사람이 거주한다. 백제에 속한다.”라고 요동반도백제가 기술되어 있다. 발해 중에 서남쪽에 큰 섬이 있는 곳은 요동반도밖에 없다. 『구당서』 『신당서』 『통전』 『삼국사기』에 백제 땅을 신라와 대진(소위 발해)이 나누어 가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요동반도가 백제 땅이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소위 강단사학계는 요동지역으로 옮겨진 웅진도독부를 대진이 차지하여 『구당서』 『신당서』 『통전』 『삼국사기』가 헛소리를 하였다고 주장한다(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괜히 백제와 무관한 곳에 웅진도독부를 옮겼다는 말이 더 헛소리일 것이다. 『괄지지』는 638년부터 642년까지 편찬된 책으로 현재 전하지는 않지만, 위 ..

역사 2023.02.02

고려의 서경 (고구려 평양)이 현재의 평양이라는 것은 개솔

『수서(隋書)』는 고구려에 평양성 國內城 漢城의 세 도회지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현재의 평양에서 漢城이라 기록된 고구려의 각자성석(刻字城石)이 출토되었다. 고구려의 평양은 고려시대 때 서경이라 하였다. 김부식은 묘청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서경으로 가면서 안북대도호부에 이르러 다른 부대와 합류하는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안북대도호부가 지금의 안주라고 한다. 그들의 말에 따라 고려의 서경을 지금의 평양이라 하면 모든 토벌군이 서경으로부터 북쪽으로 직선거리 70km까지 간 것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반란군이 바로 개경으로 남하하여 임금을 모시면 순식간에 반란군과 토벌군의 위치가 바뀌게 된다. 즉 지금의 평양을 고구려의 평양으로 볼 수는 없고 구구려의 평양은 최소한 안주 북쪽에 있었고, 현재의 평양은 각..

역사 2023.02.01

정부 가야고분군을 일제 임나설로 세계유산등재 신청, 당장 취소해야

- 현재의 신청 내용은 조선총독부가 창작한 임나일본부설의 세계적 공인을 초래할 수도 있다 - 가야고분군 세계유산등재추진단은 가야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로 가야사가 세계사적 인증을 받게 된다고 주장한다. 추진단이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고분군 7곳은, 추진단의 표현에 의하면, 금관가야(김해 대성동 고분군), 아라가야(함안 말이산 고분군), 비화가야(창녕 교동·송현동 고분군), 소가야(고성 송학동 고분군), 다라국(합천 옥전 고분군), 대가야(고령 지산동 고분군), 기문국(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이다. 그런데 추진단은 가야고분이 아닌 것을 가야고분군으로 등재하려고 하며, 가야의 지명을 자의적으로 정하고 있다. 첫째, 창녕은 가야가 아니다. 창녕은 낙동강 동쪽이어서 가야가 될 수 없고 신라에 속한다. 장..

역사 2023.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