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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야유사사학의 강단유사사학에 대한 대응의 문제

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의 다음 언급은 재야유사사학의 인식을 보여준다. ------------- 의 진위에 대한 언급도 없이 를 근거로 설명을 하기 때문에, 독자들은 고대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무심코 받아들이게 될 수도 있다. 이런 위험성에 대한 고려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부주의한 서술이라 할 수 있다. ------------- ​ 오마이뉴스도 창녕을 가야라 주장하며, 삼국사기를 무시하고 강단을 학문 취급하고 있어 유사사학의 범주에 속한다. 재야유사사학은 강단유사사학에 대한 비판에서 강단이 일본서기를 근거로 주장하고 있다고 인정한다. ​ 이렇게 인정하는 순간 강단의 소설은 역사 날조가 아닌 학문적 토론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 ​ 일본서기의 사료로서의 가치와 신뢰성에 대한 평가의 차이문제가 되어 버리기..

역사 2023.05.22

전라도천년사 편찬위원회 입장 발표문에 대한 반론

한국의 역사학계와 고고학계에선, 조선총독부의 소설을 역사라 날조한 일제 부역자가 처음 교수가 되었고, 일제 부역자에 굴종한 이들이 다시 교수가 되는 과정을 거쳤다. 일제 부역자들은 조선총독부의 소설을 실증사학이라 사기치면서 학문적 토론을 거부하였다. 조선총독부의 소설이 검증의 대상이 되는 순간 그들의 부역행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 그들은 조선총독부의 소설이 역사라고 주장하는 이들만을 후임 교수로 선정하였다. 소설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조금만 연구해도 알 수 있으므로, 새로 교수가 된 이들은, 부역자들의 부역행위를 눈감아 준 대가로 교수가 되었다. 학문을 하는 사람이 아나라, 일제에의 부역행위를 학문이라 받들어 주는 자들만이 교수가 되었다. 조선총독부 소설 신봉자들만이 교수가 되었다. 더..

역사 2023.05.13

역사비평사 투고 (우리 사회의 유사역사학 검토)

다음 글은 2023년 5월 8일 강단유사사학의 기관지 역할을 하고 있는 역사비평에 투고한 글입니다. 그들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글은 한글파일로 작성되었고, 주가 미주로 되어 있는데, 메모장을 거쳐서 블로그에 올리면서, 주의 내용이 주 단 곳에 나타나 있습니다. 감안하여 읽어 주십시오. ​ ---------------- ​ ​ ​ 우리 사회의 유사역사학 검토 ​ 1. 서 ​ 강단과 재야는 서로를 ‘유사역사학’이라 칭한다. 물론 재야는 강단을 ‘식민사학’이라 칭하나, 그 내용은 일제의 조작을 역사라고 한다는 것이므로, 강단이 재야에 대해 사용하는 ‘유사역사학’과 재야가 강단에 대해 사용하는 ‘식민사학’은 그 의미 내용이 동일하다. 이문영은 강단의 편에서 재야를 유사역사학이라 칭하며 「유사역사학 비판」이라는 ..

역사 2023.05.13

「전라도 천년사」의 백제·위 전쟁 부인

1. 「전라도 천년사」 관련 부분 ㅇ 선사·고대 3권 49~51쪽 “동성왕은 490년과 495년 두 차례 남제에 사신을 파견하여 작호 수작 요청을 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태수에게 부여된 광양·대방·조선·광릉·청하·낙랑·성양 등의 중국지명인데 이것을 근거로 백제가 한때 요서지방을 점령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동성왕 대 백제가 요서지방을 점령하고 있었다면, 영산강유역 사회가 독자적인 세력을 펼칠 수가 있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지명이 관칭된 까닭은 백제가 이 지역을 통치하고 있었다기보다 중국에서 이주해 온 중국계 백제인을 사신단으로 이용했던 것으로 이해하는 편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보다도 더 궁금한 것은 왕·후에 관칭된 면중·도한·팔중·아착·매로·불사·매라·벽중·불중 등의 ..

역사 2023.05.05

「전라도 천년사」의 장보고 날조

1. 「전라도 천년사」의 관련 부분 ㅇ 선사·고대 4권 237~277쪽 신라인들이 산동반도 초주 양주를 중심으로 중국 동해안에서 광범위하에게 집단 거주지를 형성하여 살면서, 선박제조 및 수리업·해운업·목탄제조 및 유통업, 칼 제조업, 소금생산업 등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여 해양무역세력으로서 막강한 경제력과 조직망을 갖추고 동아시아 해상무역을 주도하였다고 함. ㅇ 선사·고대 4권 241쪽 장보고가 재당 시절 일본과 교역활동을 했으므로 신라와 교섭했다는 기록은 없지만 신라와 더 적극적으로 교역했을 것이며 장보고는 재당 시절부터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국제적 무역 거상으로 성장해 있었다고 함. ㅇ 선사·고대 4권 242~248쪽 청해진 대사는 청해진과 청해진 주변 서남해변 일대를 관할하며, 자치권이 허용되었지만, ..

역사 2023.05.02

전라도 천년사의 날조 - 열도 고대사 날조

1. 「전라도 천년사」 관련 부분 ㅇ 「전라도 천년사」 고대사 부분 전체 열도에 야마토왜(왜, 대왜, 대화, 왜국)라는 고대국가가 있었고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함 ㅇ 선사·고대 4권 40~60쪽, 76쪽 백제가 망하자, 왜국이 백제를 구원하기 위해 구원병을 파견했다고 함. 백제가 무너진 후 신라와 당의 다음 목표는 왜국이었기 때문에 백제 구원을 결정했고, 왜국은 신라와 당의 침략에 대비하여 산성을 쌓았다고 함. ㅇ 선사·고대 4권 66쪽 6세기 이래 왜와 백제는 왜가 군사력을 지원하고, 백제는 그에 대한 대가로 선진문물을 전수하는 관계였다고 함 2. 실증에 근거한 「전라도 천년사」의 내용 검토 (1) 소설도 되지 않는 논리의 전개 가. 선진문물과 군사력의 대가성 ㅇ 백제가 군사력이 없어서 빌빌거리..

역사 2023.04.29

전라도 천년사의 날조 - 진국과 삼한 날조

Ⅱ. 진국과, 마한 등 삼한 날조 1. 「전라도 천년사」 관련 부분 ㅇ 총설 15쪽 “중국 사서 『삼국지』 「동이전」에 따르면 고조선 준왕이 정변으로 남하, 한의 왕이 되어 마한을 다스렸으며, 이후 진한 변한이 생겼다고 한다. 준왕이 이동한 지역에 대해 『제왕운기』,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등은 전북 익산 지역으로 보고 있다.” ㅇ 총설 58~60쪽 남한에는 원래 진국이 있었는데, 준왕이 온 전라북도 지역에서 '한'이란 명칭이 시작되어 마한, 진한, 변한 등 삼한의 명칭으로 확장되었고, 마한은 만경강유역에서 시작하여 경기 충청 전라까지 확장되었다고 함. ㅇ 선사·고대 2권 54~65쪽 기원전 3~2세기 이른바 한반도 중남부지역에서 점토대토기문화 또는 세형동검문화를 영위하던 세력집단이 진국이라 함...

역사 2023.04.29

전라도 천년사의 날조 - 고조선 부인

Ⅰ. 고조선 부인 1. 「전라도 천년사」 관련 부분 ㅇ 총설 15쪽 “중국 사서 『삼국지』 「동이전」에 따르면 고조선 준왕이 정변으로 남하, 한의 왕이 되어 마한을 다스렸으며, 이후 진한 변한이 생겼다고 한다. 준왕이 이동한 지역에 대해 『제왕운기』,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등은 전북 익산 지역으로 보고 있다.” ㅇ 선사·고대 2권 17쪽 “문헌 기록을 통해서 고조선과 관련하여 확인되는 역사적 사실의 전개과정은 1) 전국 연나라가 동쪽으로 진출하기 이전 동호와 조선이 연과 경쟁하는 기원전 4세기 후반, 2) 연의 소왕 시절, 장수 진개로 하여금 동호와 조선을 공격한 직후인 기원전 3세기 전반 3) 진나라 공격을 받아 연나라 태자 단 이 요동까지 피신하다가 살해당하기 직전인 기원전 3세기 후반 4)..

역사 2023.04.29

전라도 천년사, 조선총독부 제작 소설 유포

강단유사사학자들이 전라도 공무원들을 사기치고 수십억원의 돈을 뜯어내면서 전라도 천년사를 제작하였다. 이들은 조선총독부 소설을 역사로 주장하면서 고조선을 부정하고, 마한이 전라도이고 야마토왜의 영향하에 있었다고 사기치고 있다. 다음은 고조선과 마한에 대한 그들의 사기성을 표시한 글이다. ​ ​ 1. 총설 15쪽 --------------- 중국 사서 『삼국지』 동이전에 따르면 고조선 준왕이 정변으로 남하, 한의 왕이 되어 마한을 다스렸으며, 이후 진한 변한이 생겼다고 한다. 준왕이 이동한 지역에 대해 『제왕운기』,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등은 전북 익산 지역으로 보고 있다. ---------------- (1) 준왕이 고조선의 왕이라는 주장은 날조 준왕은 예맥조선의 왕이고 고조선의 왕이 아님. 예맥..

역사 2023.04.26

후삼한의 실체와 위치

1. 후삼한의 실체 ​ 조선총독부 소속 역사소설가 (이른 바 강단사학자) 들은 마한은 전라도 진한과 변한은 경상도였고, 마한 소국의 한 나라인 백제가 마한을 점점 점령하여 4세기 후반에나 한반도 남서부를 차지한 백제가 되었고, 진한 소국의 한 나라인 신라가 경상도 지역을 점령하여 4세기 후반에나 경상도를 차지하여 신라가 되었고, 변한 소국들은 야마토왜의 영향력 아래 연맹체로 있다가 백제와 신라에 분할점령되었다고 주장한다. ​ 삼국사기에 신라는 진한의 유민이 여섯 골짜기에서 살다가 박혁거세를 중심으로 신라를 만들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진한의 한 나라가 신라가 된 것이 아니라, 진한이라 그들이 자부했던 예맥조선의 유민들이 나라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신라이다. ​ 9년에 백제에 점령된 마한도 한 나라이다. 마지..

역사 2023.04.24

일본서기는 죄가 없다

흔히들 일본서기에 야마토임나설이 기재되어 있다고 오해한다. 그러나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일본서기에는 일본이 왜와 임나 백제 신라 등 열도의 이주민 마을을 다스리는 이야기가 적혀 있다. 일제유사사학과 강단유사사학이 말하는 대왜(그들은 야마토왜라고 이름부터 날조한다)는 일본 즉 열도백제가 다스리는 마을일 뿐이다. ​ 백제가 망할 때까지 열도에 독립된 나라가 전혀 없었다. 처음엔 가야계의 야마대(야마일, 사마대)국이 지배하고 3세기 말이나 4세기 초부터 백제가 담로를 통해 지배하고, 4세기 말 백제가 태자 전지를 왜왕으로 파견하여 백제가 직접 지배하고, 5세기 고구려와 백제의 남북국 시대를 거쳐 6세기부터 백제가 다시 지배하였다. 열도는 우리 고대사의 강역이었다. ​ 「일본서기」는 백제인들이 백제를 지우..

역사 2023.04.23

정부형태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

조선 후기는 사실상 의원내각제였다. 사대부들의 나라였다. 다수당인 노론이 그들을 지지하는 왕을 선택하고 반대하는 왕은 독살했다. 백성에겐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신의 호의호식만이 목표인 사대부들이 나라를 다스렸다. ​ 당과 무관하게 지금 국개들의 목표는 조선후기를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의원내각제로 만들어 국개라는 직업을 세습하여 대대로 호의호식하려는 것이 국개들의 목표이다. ​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등 혼군이 연속하여 나와도 대통령제가 낫다. 다음 대통령에 희망을 걸 수 있기 때문이다. 의원내각제가 되면 희망이 사라진다. 노론만을 위한, 국개만을 위한 나라가 만들어진다. ​ 대통령제 하에선 지금 대통령과 후임 대통령 사이의 권력 분립이 생긴다. 머저리들이 대통령 자리를 다툰다해도 국민의 눈치를 보..

시사 2023.04.06

종말론의 유혹

인류의 역사에서 종말론은 항상 있어왔다. 종말론은 지금의 어려운 세상이 끝나고 새로운 좋은 세상이 온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종말론, 불교의 미륵사상도, 동학의 후천개벽도 종말론이다. 불안이 원인이다. 자신의 불안도 있고, 아이들, 더 먼 아이들도 자신들 같은 또는 더한 어려움을 겪을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 세상이 끝나면 나의 책임은 희석되리라 생각한다. 책임질 수도 없고, 사실 책임도 없는 것에 대한 걱정이 종말론을 만들어낸다. ​ 따라서 세상이 어려울수록 사람들이 느끼는 어려움과 불안이 클수록 종말론은 더 퍼졌다. ​ 지금은 먹을 것이 해결되었으니 과거의 불안보다는 훨씬 덜할 것이다. 그럼에도 종말론이 아직도 유행하고 최근에는 새로운 경향의 종말론이 등장하고 있다. 그것들은 출처 불분명한 예언가들..

시사 2023.04.06

전우원은 정의로운 역사학자

사물을 자신의 이해관계를 벗어나 있는 그대로 보기는 사실 어려운 일에 속한다. 과거의 일이면 더욱 그렇다. ​ 그래서 역사를 날조해서 현재를 조작하려는 생명체들이 존재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역사날조자들이 판을 치고 있다. ​ 518도 과거이다. 전우원씨는 전두환의 손자이다. 그가 518을 객관적으로 있었던 그대로 보았다는 것은 그가 범인은 아니라는 증거이다. 그는 범인 이상으로 정의로워서 518의 진실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사료를 있는 그대로 보고 할아버지의 과거를 직시하였다. 그리고 사사로운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그의 행동을 결정하였다. ​ 강단만 역사를 날조하고 있지는 않다. 재야의 연구자들도 역사를 날조하고 있다. 날조된 역사의 수요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공통적으..

시사 2023.04.03

삼국초기 일식기록 분석 (박창범 라대일의 연구에 대한 첨언)

1. 독자 역법 고려해야 ​ 덕흥리 고분에 의해 고구려가 중국과 다른 독자적 역법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독자적 역법이라고 아주 다른 것은 아니고, 큰달 작은달이 다르거나, 윤달의 배열이 다른 수준이다. 배달국에서 역법을 개발했다면 삼한조선 삼조선 열국 모두 우리의 역법을 사용했을 것이다. 박창범 라대일 등 기존의 연구는 우리 역법을 사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였으므로 완전히 정확한 것은 아니다. ​ 물론 다른 역법으로 인해 차이가 발생하는 경우도 하루 정도 다르고,(덕흥리고분이 간지가 하루 차이) 대부분의 경우 날자가 일치했을 가능성도 있어.(동수묘 간지는 일치) 기존의 추정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 그러나 삼국이 사용했던 역법을 구체적으로 알기 전까지 일식자료는 삼국의 수도를 추정하는 참고자료로 ..

역사 2023.04.02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의 가장 큰 문제

과문하여 오늘에야 그런 날조가 있는 줄 알았다. ​ 경계성 지능장애가 있는 딸과 그 아버지를 범인으로 만들고 거기에 치정관계라는 소설을 만든, 순천 청산가리 사건의 k검새가 문제가 있다고 말해진다. ​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판새이다. 그런 허술한 증거로 무기징역과 20년을 선고한 판새가 문제이다. ​ 1심은 무죄로 하였는데, 2심과 대법원 판새들이 유죄로 하였다. 우리나라 판새는 돈 많은 피고인에게 비싼 대리인 있으면 어떻게든 처벌 않거나 약하게 하고, 돈 없는 피고인의 값싼대리인 있으면 무조건 검사 써준대로 판결한다. 지금도 판새들 그렇게 하고 있다. ​ 우리 헌법상 판새를 통제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 국개가 탄핵하는 것인데, 국개들은 자기들 사건 유리하게 판결 받으려고 모른 체 한다. 민주당 정의당..

시사 2023.04.01

강단유사사학의 낚시에 걸리면 안 된다.

강단의 현혹스런 글에 혼란스런 분이 계신 것 같아 강단유사사학의 글에 대해 반론합니다. 다음 글은 강단유사사학의 글입니다. ------------------------------ -서의식 서울대 역사교육학과 교수 신라의 국가 형성 과정을 이해하는 관건은 6촌의 성격과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는데 있다. 6촌이 어디에 있던 무엇인지가 분명해져야 이를 토대로 성립했다는 신라의 형성과 발전 과정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련 자료가 워낙 영성하여 이를 밝히는 데 어려움이 많다. 게다가 우리 사서와 중국 사서의 내용이 서로 상치하는 듯 보여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지만 역사적 진실은 양측 사서의 내용을 모두 긍정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한국 고대사회의 발전을 계기적으로 설명할 수..

역사 2023.03.29

똥이 된장되는 강단유사사학 (14. 진경대사탑비)

1. 사료 ​ 임나=가야설은 진경대사탑비에 나타나는 임나가 금관가야를 의미한다고 한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http://db.history.go.kr) 「진경대사탑비」 국역문 주석은 다음과 같다. (2022.4.25. 현재) 이 비문의 내용은 임나가 본래 김해에 있던 금관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견해의 유력한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 비문의 관련된 부분과 그에 대한 임나=가야설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http://db.history.go.kr) 「진경대사탑비」 표점문과 국역문 (2022.4.25. 현재) ​ ​ 大師諱審希, 俗姓新金氏. 其先, 任那王族, 草拔聖枝, 每苦隣兵, 投於我國. 遠祖興武大王, 鼇山稟氣・鰈水騰精, 握文符而出自相庭, 携武略而高扶王室, ..

역사 2023.03.28

임나4현에 있었던, 그러나 안타깝게도 멸종된 우리의 닭과 개

일제와 강단유사사학은 임나4현에 대해 음상사를 통해 임나4현을 경남, 전북, 충남, 경북, 전남, 부산 등 다양한 위치에 비정하는데, 김태식, 『사국시대의 가야사 연구』, 서경문화사, 2014. 180쪽. ​ 강단유사사학은 주로 전남 일원이나 섬진강 유역의 전남 동부지역으로 비정한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http://db.history.go.kr) 『國史館論叢 第91輯 > 전남지역 고대문화의 성격(최성락) > 3. 전남지역 고대문화의 배경 > 2) 문헌적 배경』 ​ 위치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현을 군단위로 보아 4현을 4군 정도의 영역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원문은 임나4현을 4군 정도의 크기로 보지 않고 있다. 이들이 근거로 하는 「일본서기」 원문은 다음과 같다. ​ 「일..

역사 2023.03.25

과대평가된 정약용

정약용은 과대평가되었다. 신분제를 옹호하고, '주역사전'과 '상례사전(喪禮四箋)'을 자신의 가장 중요한 저서로 생각하였다고 한다. 이는 그가 기본적으로 고루한 성리학자였음을 의미한다. ​ 여전제를 주장하였다가 정전제를 주장하였다는데, 정전제도 이상적인 제도에 불과하고, 지속가능한 제도가 아니라는 점에서 정약용이 살았던 시대를 감안하면 고루한 제안에 불과하다. ​ 서양의 과학기술을 통한 근본적 생산력 증대와 상공업의 발전을 주장했어야 하는 시대에 살았으므로 그를 선각자라 하기는 어렵다. 백성을 통제대상으로 보고 지배층의 도덕을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은 공자의 사상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일본이 유학이 발달되어 조선을 침략하지 않을 것이라 한 것은 그의 현실감각의 수준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

역사 2023.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