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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지가의 재해석과 「가락국기」의 사실성

목차1. 서2. 『삼국유사』 「가락국기」 구지가 전후 부분3. 구지가 해석4. 「가락국기」의 사실성5. 결  1. 서 구지가의 해석에 대한 기존 국문학계의 연구는 다양하지만, 그 해석은 자체 모순을 품고 있어 수긍하기 어렵거나, 『삼국유사』의 구지가 전후 부분과 문맥상 연결되지 않거나, 글자와 동떨어진 해석을 제시한다거나 하는 문제점이 있어 그 어느 것도 학계나 대중의 공감을 얻지는 못하고 있다. 이를 핑계 삼아 기존 국사학계는, 수로왕의 CE 42년 건국을 기술하는 『삼국유사』 「가락국기」의 사실성을 부정하고 가야의 건국연대를 2세기에서 3세기 전반이라 주장하기도 한다.본고는 구지가 글자의 뜻에 부합하고, 자체 모순이 없으며, 구지가 전후 부분과 문맥상으로 연결되는 해석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 구지가는..

역사 2024.09.26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當奈公何’의 재해석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當奈公何’의 재해석  --------------목차 1. 서2. 공무도하가 배경설화의 해석3. 공무도하가의 배경 상황 4. 생략된 이야기의 추정5. 공무도하가의 올바른 의미 추정6. 결 ----------------------- 기존 연구는 공(公)이 황하를 건너지 못하고 익사하였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이 가정은 배경설화 원문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이러한 잘못된 전제 하에 기존 연구는 ‘當奈公何’의 의미를 탄식으로 해석한다. ‘當奈公何’가 탄식이 되면 왜 공무도하가가 민요로 될 정도로 사람들의 공감을 얻게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본고에서는 중국인들이 만든 왜곡을 벗겨내고 생략한 부분을 보완하여 공무도하가가 창작된 상황을 재구성한 후, ‘當奈公何’의 의미가 ‘고통을 ..

역사 2024.09.21

고구려 왕통의 변경 (장수 3대왕 미스터리 해결)

1. 서 서진 태강 연간에 쓰여진 『삼국지』는 고구려의 왕이 본래는 涓奴部에서 나왔으나 점점 미약해져서 지금은 桂婁部에서 나온다고 하며, 『후한서』 「동이열전」도 왕이 본래는 消奴部에서 나왔으나 점점 미약해져서 뒤에는 桂婁部에서 나온다고 한다. 『삼국사』는 부여가 항복하니 연나부(掾那部)에 두었다고 하는데, 이는 연나부가 왕의 부였기 때문이라 추측된다. 따라서 『후한서』의 소노부보다는 『삼국지』의 연노부가 타당하다고 보인다. 고구려 초기의 왕족인 해씨는 연나부 소속이었는데, 계루부의 고씨가 정권을 탈취하여 고구려의 왕통이 변화하였다. 새로 정권을 탈취한 고씨는 새 나라를 세울 능력이 없어 고구려를 유지하였다. 이러한 왕통의 변화는 『삼국사』의 태조왕 기사에 은닉되어 있다. 본고에서는 고구려의 왕통 교체를..

역사 2024.09.13

영산강왜의 전방후원분 관련 안정준의 주장(2024.910. 경남도민일보)에 대한 반론

https://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920244전라도 지역 고대 일본식 무덤은 한-일 민간 교류 증거 무게당연한 얘기지만, 역사학은 '한일전'이 아니다. 현재 한국·일본 양국의 역사학자들은 다양한 주제를 통해 학술 교류와 논쟁을 이어가는 동시에, 동아시아의 역사상을 함께 만들어가는 동반자 관계에 있다. 예컨대 근대 일제가 일본군 '위안부'와 징용 피해자들을 동원한 행위가 '강제성'을 띤www.idomin.com​​전라도의 전방후원분 관련​먼저 안정준은 "고대 일본(왜)의 문화가 강하게 드러나는 고분들"이라 하면서 일본과 왜를 구별하지 않고 있다. 일본과 왜를 동일시하는 것이 강단사이비들의 가장 큰 사기이다. 일본은 백제의 별칭이었다. 일본서기의 일본..

역사 2024.09.11

장무이묘의 연대추정, 468년.

올바른 연대 추정​장무이묘의 벽돌로부터 [大歲戊在漁陽張撫夷塼, 大歲在戊漁陽張撫夷塼] 무덤을 무신년에 만든 것으로 볼 수 있다. ​太歲申漁陽張撫夷塼와 使郡帶方太守張撫夷塼으로부터 묘주가 고구려 유주의 어양에서 태어나 대방태수를 지냈던 고구려인 장씨임을 알 수 있다. 강단유사사학은 대방태수와 撫夷를 허구의 자칭이라고 주장하나 무덤에 허구의 관직을 적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撫夷는 고구려 왕이 위로부터 받아 준 작호이다. ​무신년은 고구려가 후연을 정복한 이후의 무신년이다. 따라서 408년도 가능하나, 덕흥리고분의 태소래조도에 의하면 고구려는 초기 현지인을 태수로 임명하였으므로 408년으로 보기는 어렵다. ​위는 488년과 490년 백제와의 전쟁에서 대패한 이후 쇠락의 과정을 겪는다. 또한 523년에는 ..

역사 2024.09.10

강단사이비의 서북한 기년명 벽돌 연대 추정의 사기성

주석은 위 화일에만 나옵니다.​   강단사이비의 서북한 기년명 벽돌 연대 추정의 사기성  1. 서  강단유사사학과 강단유사고고학은(이하 ‘강단사이비’라 한다) 평안도와 황해도를 낙랑군과 대방군 지역으로 보아 이 지역에서 발견되는 유적과 유물의 주체를 중국인이나 중국계 이주민이라 주장하며 벽돌에 사용된 연호를 중국 왕조의 것으로 본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엔 일제·중제유사사학의 소설을 향한 무한한 충성심 외에는 근거가 전혀 없다.   2. 강단사이비의 연대 추정 광화5년명 전, 황해도 봉산군, 182년(후한 靈帝 光和 5년)흥평2년명 전, 평안도 대동군, 195년(후한 獻帝 興平 2년)정시9년명 전, 황해도 신천군, 248년(조위 齊王 正始 9년)가평2년명 전, 황해도 신천군, 250년(조위 齊王 嘉平 2년..

역사 2024.09.10

일본서기 사료비판과 관련한 임동민의 주장(24.9.2. 경남도민일보)에 대한 반론

https://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919665복어를 닮은 일본 역사책, 독이 있다고 버려야 할까복어는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맹독을 품고 있지만, 자격 있는 전문가가 독만 제거하면, 맛있는 요리로 재탄생한다. 역사책 중에도 '독이 든 복어'로 비유되는 책이 있다. 일본 고대사를 기록한 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는 8세기 일본에서 자신들의 역사를 정리하여 편찬한 역사책이다. 당www.idomin.com​​임나는 가야인가?​임동민은 일본서기는 "고대 한일 사이 다양한 사건 기록돼 있으나 일왕 중심 과장ㆍ왜곡'이중 굴절ㆍ연대 불분명' 한계 주의해 연구에 활용하면 중요 자료"라고 말하면서 "경남 일대에 있던 가야 여러 나라의 역사가 에 많이 들어갔다."..

역사 2024.09.05

진경대사를 왜인 후손이라 보는 건 '자의적 비문 곡해'라는 이근우의 주장(24.8.26. 경남도민일보)에 대한 반론

https://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919138진경대사를 왜인 후손이라 보는 건 '자의적 비문 곡해'2021년부터 진경대사 심희가 왜인의 후손이라는 설이 퍼져나가고 있다. 그 발단은 에 실린 가야불교연구소장 승려 도명이 기고한 글이 아닐까 한다. 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는 보물로 지정된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고, 진경대사는 구산선문 중 하나인 창원 봉림사를 창건하신 분이다. 이 비문www.idomin.com​​1. 도명이 진경대사를 왜인이라 하였는가?​이근우는 도명이 진경대사를 왜인이라 하였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도명은) 진경대사의 조상이 임나의 왕족인 초발성지라고 주장했다. 초발(..

역사 2024.09.04

유사역사학이 가야사 연구 방해한다는 조법종의 주장(24.8.12. 경남도민일보)에 대한 반론

https://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918314'일본서기' 인용하면 무조건 식민사관? 따져보면 사실 아냐지난해 9월 유네스코가 국내 7개 가야고분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면서 가야사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겁습니다. 오는 9월 김해에 국립가야역사문화센터도 개관을 앞두고 있습니다. 가야고분군이 속한 10개 광역·기초지자체로 구성된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통합관리지원단도 세계유산인 가야사의www.idomin.com​​1. 조법종의 토론 수준 조법종은 그의 글 처음부터 끝까지 인신공격을 하고 있다. ​-------------------- 와 등 지역사 서술 내용 중 를 활용해 가야 및 마한의 국명과 지명 위치를 한반도 지역에 비정(비교하여 정함)한 것에..

역사 2024.09.04

경인명도가 증명하는 백제의 열도 지배

주석을 보기 위해선 첨부 화일을 보아야 함  1. 서 연민수는 구주에서 출토된 경인명도가, 백제 성왕이 관산성 전투에서 신라군에게 전사할 당시 지원군으로 파병된 야마토왜 정권의 북구주 호족인 축자화군(筑紫火君)에게 위덕왕이 보낸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연민수의 글은 논문으로서의 기본적 형식도 갖추지 않고 있으며, 그의 주장은 근거가 매우 희박하다. 연민수는 야마토왜 정권의 실재를 인정하고 있으나 이 칼은 열도가 백제의 영토였음을 증명하는 또 다른 증거의 하나로 드러난다.  2. 연민수의 글은 논문 형식을 갖추었는가? 띄어쓰기는 연민수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띄어쓰기법에 의해 작성한 것 같아서 언급하지 않겠다. 그만의 독창적 띄어쓰기법을 활용한다면 독자를 위해 그가 행하는 방법의 개요라도 설명해 주었으면 좋겠..

역사 2024.09.04